불국사
"불국사는 지난 1995년 석굴암, 서울의 종묘,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경주여행을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경주에 와서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고 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걸출한 문화유산이다.
"불국사는 지난 1995년 석굴암, 서울의 종묘,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경주여행을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경주에 와서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고 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걸출한 문화유산이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은 별궁이었던 동궁에 커다란 연못을 파고 화려한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들여와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보문관광단지의 초입에 자리한 경주동궁원은 삼국유사 속 동궁과월지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어 지난 2013년 조성한 사계절 테마관광시설이다. 동궁식물원과 버드파크로 크게 구성되며 농업연구체험시설, 야외정원, 음악분수 등 부대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경주야경 제 1의 명소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동궁과월지는 ‘안압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 무리가 있는 연못이라 하여 ‘안압지’라 불렀는데, 원래 이곳은 신라시대 왕자들이 기거하던 별궁이 있던 자리다. 그래서 2011년 ‘동궁과 월지’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황리단길은 경주에서 가장 젊은 길이다. 내남사거리에서 시작해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의 도로를 기준으로 양쪽의 황남동, 사정동 일대의 지역을 일컫는다. 몇 해 전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분위기 좋은 카페, 아기자기한 소품, 기념품 가게, 개성 있는 식당들이 들어섰다. 초기에는 도로변을 중심으로 상점들이 들어섰는데 황리단길 외연이 확장되면서 골목골목마다 개성있는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경주월드는 지난 1985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개장한 역사가 깊은 놀이공원이다. 도투락월드로 개장했다가 경주월드라는 이름은 1992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경주월드 어뮤즈먼트’와 워터파크인 ‘캘리포니아비치’가 있다. 경주 월드 어뮤즈먼트의 대표 테마존은 ‘드라켄’이 있는 드라켄 밸리이다. 롤러코스터 전문 설계회사인 B&M사에서 설계한 놀이기구인 ‘드라켄’은 국내 최초로 90도 수직낙하하는 다이브코스터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더해 지상 70미터 높이에서 낙하하는 메가드롭과 인버티드 롤러코스터 파에톤 등 스릴 넘치는 어트랙션이 가득한 ‘엑스존’도 인기다.
"캘리포니아비치는 주차장등 부대 편의시설을 제외하고도 워터파크 유효시설공간만 33,000㎡에 달하는 대규모로 국내 유수의 워터파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시설이다. 캘리포니아비치의 기본적인 시설 컨셉은 기존 정적인 휴식개념의 워터파크에서 벗어나 “젊음”과 “열정” 그 자체를 컨셉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따라 도입되는 대부분의 어트렉션들 역시 익사이팅하고 컬러풀함 그 자체이다.
"1970년대 ‘관광’에 주목하면서 경주종합개발계획사업이 수립된 이래, 북군동, 신평동, 천군동을 아우르는 240만여 평의 면적에 종합 관광휴양지 ‘보문관광단지’가 조성되었다. 거대 인공호수인 보문호를 중심으로 그 둘레를 따라 특급호텔, 콘도, 컨벤션센터, 레저 및 휴양시설, 테마 관광시설이 속속 들어섰다. 또, 보문관광단지의 대부분의 가로수는 벚나무로 식재되어 있어 봄이면 만개한 벚꽃 흩날리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보문관광단지를 빼놓고 경주 관광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은 경주의 사계절 필수 여행코스로 손꼽힌다.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 첨성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첨성대를 이루는 돌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첨성대의 모양은 하늘과 땅을 형상화했다.
"신라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라고 알려진 신라 헌강왕 때에는 바람과 비가 때에 맞게 불고 내려 나라가 풍요로웠다. 또 수도 금성에서는 기와 처마가 줄을 이어 비 맞을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포석정지도 신라 헌강왕 때 조성된 연회 장소로 전해진다. 신라의 가장 흥했던 시기에 조성되어 신라 쇠퇴까지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